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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회 "노블레스 오블리주 - 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

관리자 | 2016.09.26 09:44 | 조회 276

 

 

 

 

 

 제249회 수요세미나

 

 노블레스 오블리주 - 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

 

 

 

 

주제: 노블레스 오블리주 - 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

연사: 송복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일시: 2016년 9월 21일(수)

장소: 한림과학원 회의실(대학본부 인문 1관 6층 2634호)

 

 

노블레스 오블리주 - 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송 복

 

 

서문

1) 「역사의 동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역사의 동력」은 발전의 엔진이다. 엔진이 있어 배가 가고 자동차가 달리고 비행기가 난다. 그 동력이 있어 국가는 재조(再造)되고 국민은 활력에 찬다. 그 활력이 넘쳐서 온 국민이 글로벌로 뛰고, 온 세계를 한나라인양 누비고 또 누빈다. 역사의 창(窓)은 오직 그 동력으로만 열린다. 앞선 시대와 다른 새 시대도 새로운 동력 없이는 이행(移行)이 불가능하고, 그 시대의 시대정신도 그 내용이며 내실은 모두 이 새 동력으로 창출된다.

그 동력을 지난 세기 60년대 이래의 첫 30년은 「적나라한 물리력」에 기초한 「강력한 리더십」에서 찾았다. 그 리더십이 「역사의 동력」이 되어 유례에 없는 산업화를 성취했다. 지난 세기 90년대 이래의 민주화시대 첫 30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의 동력」은 무엇인가. 국민들은 아직도 산업화시대 성공모델의 관성(慣性)에 젖어, 대통령 1인의 빼어난 능력이나 형안(炯眼) 정치력 등의 리더십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한다」하지만 재현(再現)되지는 않는다. 헌법을 바꾸고 정부 정치인 국회의원들이 개심(改心)하고 작심(作心)을 해서 협치(協治)를 해도, 지난날의 그 같은 「역사의 동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대가 달라졌다. 이 시대는 정치제도를 달리하고 그 정치제도에 맞는 정치인을 뽑는다 해서 역사가 달라지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정치 고전주의(古典主義)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좋은」헌법 「좋은」제도 「좋은」정치인과 「좋은」국가를 등식화하던 정치낭만주의는 이 시대의 것도, 다음 시대의 것도 아니다.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것이 좋다. 허망한 기대는 언제나 허망하다.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할, 그리고 기필코 만들어 내야 할 새 「역사의 동력」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지금 우리 시대, 다른 나라 아닌 바로 이 나라의 「역사의 동력」이다. 이 동력은 우리보다 앞서 민주화한 선진민주주의의 국가들의 경험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200년 이상 선진의 지위를 변함없이 유지하게 했는가. 그 「역사의 동력」은 무엇이며 어디서 나왔는가. 그 어떤 동력으로 그들 「민주화」와 우리 「민주화」는 다른가. 산업화에선 그들이나 우리나 지금 차이가 없지 않은가. 산업화에서 따라잡았다면 민주화에선 왜 따라 잡지 못하겠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노블레스 노블리주의 있고 없음이다. 그들은 그것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 그들도 우리도 다 같이 저성장 양극화에 신음하고 있다. 그들 국민도 우리 국민도 심한 갈등에 날카로워 있고, 들끓는 분노로 다 같이 가슴을 앓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존경심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있고, 「계속」 도덕심을 높여주는 집단이 있다. 그리고 사고와 행동 일상생활에서 지표(指標)가 되는,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 수범(垂範)을 보이는 계층이 있다. 그들이 있어 그들 나라는 「계속」 선진국이고, 선진국으로서의 지위를 그 오랜 세월 「계속」 지켜 나가게 하는 힘이 나온다. 그들의 존경심 그들의 도덕심 그리고 그들의 수범성이 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나오고, 바로 그것이 역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된다. 그 동력이 지금 우리에게는 없다.

 

2)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한마디로 「특혜」 받는 사람들의 책임이다. 옥스퍼드사전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 privilege entails responsibility」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특혜와 책임은 동전의 안팎이다. 동전은 반드시 그 안팎, 양면이 있어 동전이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없어진다. 책임 없는 특혜는 없다. 특혜를 받았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긴 눈으로 보나 짧은 눈으로 보나, 「특혜만 챙기는」 특혜 받는 사람, 그들의 수명은 너무 짧다. 그들이 끝나는 자리는 질타와 분노와 치욕만이 기다리고 있다.

특혜 받는 사람들의 책임은 3가지로 나타난다. 이 3가지는「희생(犧牲)」이라는 말 하나로 축약되고, 그 희생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첫째로 목숨을 바치는 희생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혹은 심각한 안보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 「내 목숨」을 내 놓는 것이다. 총알받이처럼 선두에 서서 싸우다 특혜 받는 내가 먼저 죽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누려온 특혜의 대가다. 공자(孔子)도 꼭 같은 말을 했다. 논어(論語)에서 말하는 견위수명(見危授命)이 그것이다.

둘째로 기득권(旣得權)을 내려놓는 희생이다. 전쟁은 아니라 해도 위기라 할 만큼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 「내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기득권은 특혜를 먼저 「선점(先占)」해서 오래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앞서 차지하면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전철간의 자리도 내가 먼저 앉으면 장애자가 와도 일어서지 않는다. 하물며 높은 자리며 소득이며 권력이랴. 논어에서는 기득권을 내놓으라 하면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못하는 행동이 없다」(無所不至)했다. 그럼에도 그 기득권을 미련 없이 내려놓는 것이 노브레스 오블리주다. 특혜 받은 자, 받는 자의 직심(直心)이다.

셋째로 배려와 양보. 헌신의 희생이다. 이는 평상시 일상 생활과정에서 남을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고, 내 이해를 떠나 진심전력으로 남을 돕고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남 앞에 언제나 겸손하고 소위 말하는 「갑(甲)질」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일반 국민 모두가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특혜 받은 사람 특혜 받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갑질」이라는 말은 유독 지금 우리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야만적 행태」다. 특히 우리 고위직 층의 위세 위압적 태도를 태양 아래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들어 내주는 말이다. 자기 수양 자기관리가 전혀 안 돼 있음은 물론, 거기에 가정교육과 학교교육까지 제대로 받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천민행위다. 선진 민주주의의 국가의 고위직 층에서는 그 짝을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3) 우리 고위직층은 나라로부터 국민으로부터 「특혜」 받고 있다는 「특혜의식」이 없다. 내가 잘나서 ,내가 능력과 경쟁력이 있어서 지금 이 자리에 올라와 있고, 그리고 지금 받고 있는 것은 국가 국민으로부터 받는 「특혜」가 아니라, 내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준에서 보면 철면피나 다름없다. 특히 이 말을 쓰는 원산지 사람들의 사고에서 보면 금수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금 우리가 「간절히」찾고 「간절히」 소망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느 나라든 그 나라 상층(上層)의 행태다. 상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짐으로 상류사회(High Society)를 형성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상층은 있는데 상류사회가 없고, 고위직층은 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 그 전형적 예가 고위정치인(국회의원)이며, 고위관료, 고위 법조인이다. 그들이 물러나고나면 「○○피아」가 그들 이름 뒤에 붙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는 정반대되는 마피아라는 것이다, 기가 막힐 일이다.

그래도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우리의 기업가층은 고위직층에 비해 역동성(dynamism)도 있고 돌파력(breakthrough) 창발성(creativity), 거기에 현장(field)감각과 방법론(methodology)이 있다. 지금 이 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되어있는 것은 그들 기업가층이 있어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그들이 누리는 특혜, 그들이 가져야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팽개치고, 오히려 기업인들을 규탄하고 있다. 그래서 2,000년 이후의 우리 상층의 문제점을 이들 정치고위직 층을 비롯한 여타 고위직층에서 찾아, 그들이 지금 갖지 못한 5개를 이 책에서는 5무(無)로 해서 분석했다.

 

정말 우리 상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천민 상층으로 내내 지속해 갈 것인가. 아니면 언제부터인가 「역사의 동력」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질 것인가. 이 책에서는 신라의 상층을 본보기로, 역사적으로 우리에게도 있었던 그 엄연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예시했다. 사실 신라인들의 그것은 지금까지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이 보여온 그 노블레스 오블리주보다 오히려 더 리얼하고 치열했다. 그 같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영리함 그리고 그 지혜로움으로 해서 언젠가는 우리 고위직층도 깊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고, 그들의 「특혜」누림은 「희생의식」으로 전환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반드시 발현될 것임을 예단한다.

서구인들도 오랜 역사에서 숱한 위기를 경험하면서 그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쌓아올리지 않았는가. 우리 역시 지금까지 허다한 난관을 헤쳐 나오며 주저앉지 않고 버티며 일어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고위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도래(到來)를 기대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2016. 6월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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