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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차 동아시아 개념소통 포럼

관리자 | 2012.12.24 00:00 | 조회 1782



<제55차 동아시아 개념소통 포럼>

제목 : 중국의 부상과 세계사의 재조명 


-캘리포니아 학파에서 글로벌 헤게모니論까지-

 



연사 : 강 진 아 (한양대 사학과)

일시 : 2012년 12월 6일(목) 

장소 : 한림과학원 회의실 (연암관 6층 2633호실)

-목차-

Ⅰ. 머리말
Ⅱ. 근대와 자본주의 
Ⅲ. 캘리포니아 학파 : 원공업화 이론과 동서비교
Ⅳ. 세계사 새로 쓰기와 글로벌 헤게모니론 
Ⅴ. 맺음말

Ⅰ. 머리말

이 글의 목적은 2000년 이후 미국에서 급진전되고 있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으로부터 세계사를 다시 쓰는 학문적 조류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 학문 思潮의 흥기가 가지는 정치적, 학문적, 사회적 함의를 탐구하는 것이다.
21세기를 전후하여 역사학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논의된 주제는 유럽중심주의 사관의 극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럽중심주의 사 관 하에서 세계사와 근대의 형성은 16세기 이래 유럽이 비유럽세계로 팽창하면서 유럽이 창출한 근대문명이 지구 전체로 확대되는 과정으로 서술되었다. 그것이 논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야만을 문명화하는 근대화의 과정이었든 제국주의로 불리는 식민화와 착취의 과정이었든, 이 시각에서 서술되는 세계사에서 아시아를 포함한 제3세계 지역은 모두 서구의 “문명적” 혹은 “착취적” 근대 문명을 피동적으로 학습하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서구는 주체요, 비서구는 서구에 의해 개조되는 객체였던 셈이다. 이와 같은 역사관은 구미 사회의 주류적 시각이었을 뿐만 아니라, 비서구 사회에서도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유럽이 여타 문명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시기는 근대였다. 그러므로 유럽중심주의의 극복은 근대를 극복하자는 탈근대주의와 결부되었고, 또한 유럽 문명이 낳은 그 근대 문 명을 목적으로 단선적으로 역사가 발전했다는 진화론적 역사관의 극복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은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흥기와 더불어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가 제기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되며 냉전의 저울 이 기울어지자 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는 서구 근대문명의 우월성을 재확인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2000년을 전후하여 냉전의 최후 승자인 미국과 서구 근대 자본주의 문명을 동일시하면서 구미의 승리의 연원을 역사적으로 찾으려는 세계사 서술 역시 활성화되었던 것이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제3세계권에 있었던 지역 중에 유일하게 동아시아가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사회주의권의 붕괴 와중에서 세계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이 기록적인 경제발전을 시작하자, 아시아의 성장을 역사적으로 해명하려는 흐름 역시 198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말부터 중국이 미국에 도전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 이 정치-경제적으로 커지게 되자, 그 역사적인 설명을 추구하면서 구미 중심의 세계사 자체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조류로 전개되게 된다. 
이미 몇 편의 논문으로 소개된 바 있는 캘리포니아 학파(California School)의 新세계사 (new world history)가 그러하며, 사회과학 이론 진영에서 프랑크(A. G. Frank)와 아리기 (G. Arrighi) 등 새로운 세계체계론이 그러하다. 이 글에서는 기왕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면서 구미의 아시아관이 오늘날까 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그 현주소까지 온 논리적 굴곡의 역사를 추적하여 향후 새로운 세계사와 근대화 이해를 위한 도움을 주고 자 한다. 그 동안 중국의 부상을 계기로 역사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전개되어 온 아시아사와 아시아의 재평가 경향이 어떻게 미국의 중국 및 아시아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있고, 또 한편 현실의 이런 시각들이 어떻게 학문 연구에 반영되고 있는지 그 상호작용의 일단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Ⅱ. 근대와 자본주의

16세기와 17세기 유럽에서 중국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동경적이고 우호적이었다. 明淸 시기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전하는 낭만적 동쪽 제국의 이미지는 지식인들의 유럽내부의 문제들에 비판과 맞물려 유럽 비판에 영감을 제공했다. 그랬던 중국을 보는 시각이 계몽주의 시대가 되면 뚜 렷하게 긍정과 부정으로 분기되었다.
물론 라이프니츠, 볼테르, 케네, 중국에서 유교 이념에 기초한 자애로운 전제주의, 과거제도에서 보이는 능력주의, 농업에 기초한 국민경제를 미덕으로 찾아내어 유럽 사회가 배울 것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몽테스키외(1689-1755)는 일찍부터 유럽보다 열등한 중국을 강조하면서 비판했다. 그는 『법의 정신( The Spirit of the Laws)』에서 기후론을 근거로 동서 문명의 우열을 논했다. 중국의 위정자들은 정체적이고 전제적인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는데 중국의 법률과 관습은 진화하지 않고, 오로지 정복자에 의해서만 새롭게 바뀔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부정적 중국관에는 19세기 유럽의 부정적 중국관의 핵심요소 즉 정체성과 전제성 비판이 이미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9세기가 되면 몽테스키와 같은 부정적 시각이 주류가 되었다. “진화하는” 유럽과 “정체된” 중국이란 이미지는 사실 유럽 지식인들의 뇌 속에서 만들어 진 것이라기보다는,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이뤄진 동서양 문명의 역전, 그리고 그 역전의 동력이 된 유럽이 창출한 “근대”라는 문명이 낳은 실체를 투영한 거울이었다. 18세기 말-19세기 초, 무역 급증하게 되면서 유럽 상인들에 의 해 중국과 아시아에 대한 부정적 담론이 강력하게 전파되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의 발동과 19세기의 본격화가 유럽 사회를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로 몰고 가면서, 일찍이 앞서 있었던 중국과 아시아는 “정체적”이며 “진화하지 않는” 사회로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1820년대에 중국과 유럽 간에 무역 역조가 발생하게 되면서 케네스 포머란츠(Kenneth Pomeranz)가 말한 “거대한 분기(great divergence)”의 시작되었다. 그리고 1840년 아편전쟁 이래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제국주의 시대의 유럽인들의 “문명화의 사명”과 “근대화론”의 등장시키면서 비유럽지역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침략을 합리화했다. 이 시대를 거치면서 나타난 “근대화론”은 유럽만이 근대 문명을 창출할 수 있었음을 강조하고 그를 위해 산업혁명보다는 시장경제, 소유권 확립과 자본 형성, 노자 관계 등 제도 전반을 중시하면서 유럽 근대의 시작을 16세기 대항해시대나 17세기 과학혁명까지 소급했다. 20세기 말에 탈근대주의(post-modernism)와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세기 전환기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이 끝났을 때, 그것은 자본주의 진영의 최종적 승리가 역사적으로 확정된 것이며, 미국과 유럽의 제1세계가 소련, 동유럽의 제2세계와 19세기에 식민지를 경험한 비유럽지역인 제 3세계에 대해 거둔 최종적 승리로 해석되었다. 역사학계에서는 왜 자본주의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가,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를 낳은 근대, 근대를 낳은 유럽문명이 왜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화두로 뜨거웠다. 세계사가 주목을 받고 거시사가 유행했다. 
그러나 경제사의 방면에서는 이런 경향을 뒤집는 이론적 발전이 축적되어 갔다. 경제사학자들이 근대자본주의의 역사적 연원을 사회제도적으 로 확산시키는 학자들의 시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자본주의나 근대에 대한 논의를 무기 에너지와 기계제 대량생산을 핵심으로 한 산업 혁명으로 되돌리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자본주의를 제도사적으로 논할 경우 점점 자본주의의 경제학적 정의가 더욱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성과의 진전 속에서 16세기 지리상의 발견부터 유럽 근대 자본주의의 성립과 전파라는 세계사 발전에 관한 통설적 이해가 도전받기 시작함. 그 선두인 캘리포니아 학파의 자양분이 된 것은 서양경제사에서 먼저 축적된 이론적 성과인 原공업 화(proto-industrialism)였다.

Ⅲ. 캘리포니아 학파 : 원공업화 이론과 동서비교

많은 역 사가들이 “산업혁명이 등장하기 위한 선행조건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에서도 1970년대 원 공업화론은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를 “原工業化(혹은 프로토 공업화)의 시대”라고 부르며 산업혁명을 탄생시킨 원동력을 농촌수공업에서 찾았다. 이 이론으로부터 오늘날 캘리포니아학파의 동아시아 재평가가 시작되는 발판이 마련됨. 원공업화론은 근대 탄생의 준비가 그 이전 시대의 발달한 농촌수공업과 시장경제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함으로서, 동아시아에서 근대의 가능성 검토와 전근대 발전의 비교사적 평가도 새롭게 시도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 원공업화 이론을 주창한 멘델스(F. F. Mendels)는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과 린넨 방직업을 소재로 17, 18세기 서구의 “원공업화모델”을 구상했다. 이에 따르면 동시기 유럽의 농촌공업은 주곡생 산에 안 맞는 가난한 농촌에 파고들어가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수공업 발전지역은 곡창지대인 저지대가 아닌 고지대가 많았다. 즉 멘델스의 모델은 “발전과 빈곤이 병존하며 상호 강화하는 모델”이다. 결국 원공업화 시기의 농촌수공업이 근대적 공업의 태동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했다고 것인데 그러나 직접적으로 어떻게 전환이 발생하는 가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멘델스는 농 촌가내공업에서 공장제도로 이행을 “先貸制(putting-out system) 수익체감설”로 설명한다.
이에 대해 齊藤修는 두 가지의 비판을 가하는데 첫째는 “선대제 수익체감설”의 실증 사례는 플랑드르 모델보다는 영국이 많다는 것이다. 즉 반드시 선 대제가 한계에 달하면서 공업화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齊藤修는 하박쿡(John Habakkuk) 가설을 들어 고정자본의 증가, 노동의 희소성과 그에 따른 실질임금의 상승 정도가 최대의 요인이다. 19세기 미국과 영국의 비교를 통해 오히려 원공업화는 산업혁명으로 표상되는 본격적 공업화를 낳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였다고 반박했다.
유럽에서 새로운 산업혁명론으로 각광받던 원공업화론은 근대로 넘어가는 경제적 동력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 원공업화론 논쟁에서, 내부적으로는 근대의 계기가 없다는 비판의 핵심이 새로운 이론의 전개를 불러오게 되었다.
우 선 아시아 연구자들은 멘델스가 그린 원공업화론의 양상, 중국과 일본, 인도의 선진지역과 극히 유사하다는 점에 착목했다. 이는 중국 자본주의 맹아론의 성과였다. 원공업화론의 유럽모델이 중국사 연구 성과와 결합하여 본격적으로 동서 비교사와 세계사의 재검토로 이어지는 것은 1990년대 말에 가서였다. 그리고 그 시기는 냉전 종료 직후 성행한 서구 문명과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절대화와 찬양 붐이 사그라지고 환경 문제의 대두 등 근대산업주의의 후유증이 글로벌한 규모로 전개된 시기와 일치하며, 또한 중국경제의 급격한 부상과 글로벌 경제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비중 확대가 확연해진 시기와도 일치한다. 
역사적 사실의 발굴과 재검토를 통해 중국에 유럽과 마찬가지의 원공업화가 존재했다고 확인하면서 근대/산업화 이전 유럽-아시아의 동등한 발전이 조명되기 시작하였다. 그 첨단의 논의의 물고를 터트린 그룹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계열의 사학과, 사회학과, 경제학과에서 역사를 전공하던 학자들이 주축 이 된 이른바 캘리포니아 학파이다. 이들은 원공업화 시기의 발전 동력을 스미스적 발전(the Smithian Growth) 내지 스미스적 동력(The Smithian Dynamics)이라고 부른다.
웡(R. Bin Wong,『중국의 전환』, 1997)은 멘델스의 원공업화론 비판, 이러한 발전 형태=스미스적 발전형태(시장과 분업이 주도하는 발전 형태)=중국에서 최 성숙했다고 주장했다. 웡은 중국경제를 유럽과 본격적으로 비교하여 종전의 세계사 통설을 수정하면서도, 기존 경제학에서 아담 스미스 의 매뉴팩처 생산과 근대 산업혁명의 이해 방식에도 수정을 가했다.
포머란츠는 더 나아가 유럽과 중국이 모두 한계에 달한 스미스적 경제 역학을 영국만이 유일하게 돌파했다고 주장했다. 포머란츠에 따르면, 유럽과 중국 모두 스미스적 경제발전과 원공업화를 겪었으며, 농촌 가내수공업의 발전 및 인구 증가 이로 인한 토지 부족과 인구 압력, 생태환경의 악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영국만이 “화석연료와 기계를 이용한 대량 생산”(산업혁명)으로 돌파할 수 있었는데 이는 석탄 분포와 아메리카 식민지 덕분이다.
이백중 중국사학계의 “자본주의 맹아 콤플렉스”의 지적하면서 실증적으로는 캘리포니아 학파의 강력한 비판자인 필립 황(Philip Huang)을 비판했다. 또한 이백중의 학문적 기여는 강남경제를 “초경구조(超輕構造)” 즉 경공업이 압도적인 구조라고 밝힌 것이다.
그런데 반유럽중심주의 진영 내에도 이견들이 존재한다. 틸리(Charles Tilly)는 기계화와 에너지 혁명의 강조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classic Marxist)”의 방식이라 부르며 비판했다. 초기 근대화를 깊이 파고들수록 기계화에 앞서 일어난 생산관계의 심대한 전환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자본-노동관계 배치의 뚜렷한 전환을 강조해 원공업화론에 대한지지를 보인다. 吳承 明은 웡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단절을 강조한 것으로 비판한다. 중국 역시 초역사적 보편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는 것을 강조한다.
종합하자면 서양사의 원공업화 이론, 동양사의 자본주의 맹아론은 각각 다른 맥락에서 이론적· 실증적으로 발전해오다가 유럽중심적 역사관의 재고와 작금 동아시아 경제의 발전이 배경이 되면서 東西比較史 가운데 새롭게 결합되었다. 근대 이전 양측 발전의 대등성이 강조한다. 서구 근대의 우위는 적어도 산업혁명 및 에너지혁명 이후, 분기의 발생 동력은 내재적 아닌 외재적이며 우연적인 요소들의 결합에 의해 나타난다고 본다. 그러나 연구는 서구 근대의 경제적 발전과 돌파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가치평가를 하지 않으며, 분기 이후에 동아시아에 대한 재평가는 멈춘다. 그러나 그 이론은 오늘날 미국 사회과학계의 아시아관과 중국관을 바 꾸면서 현상 분석과 미래 전망에까지 동원된다.

Ⅳ. 세계사 새로 쓰기와 글로벌 헤게모니론 


1. 제국론


원래 제국론은 정치학적 “帝政國家”론과 경제학의 홉슨=레닌 타입의 제국론이라는 크게 상반된 견해가 병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고대 제국에서 현대의 소련이나 미국까지 통시적으로 포괄하는 New “제국” 이론의 등장하고 있다.
그 대 표적 예로 마이클 도일(Michael W. Doyle)은 제국을 “국제간에 비대칭적 권력 행사의 한 형태”로 보았다. 권력 행사의 負荷에서 “영향-구속-지배” 의 단계에서 “지배”에 해당시켜 가장 강력한 형태로 규정했다. 도일이 정의하는 제국은 “공식적 제국”과 “비공식의 제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보았다.
알렉산더 모틸(Alexander J. Motyl)은 제국을 “집권적 조직을 가지고 영역적으로 하나로 모아지는 중심(core) 및 그것과 문화적으로 구별되는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역시 영역적으로 하나로 모아지는 여러 개의 주변(Periphery)으로 구성되며, 중심 지역이 주변 지역에 대해 독재적인 관계를 가지는 政體”라고 보았다. 이 정의로 제국의 범위에는 페르시아, 로마에서부터 근대 영국, 현 대 소비에트까지 포함되게 된다. 이들 외에도 역사가 야마우치 마사유키와 리벤(Dominic Lieven)은 러시아와 소련은 모 두 제국으로 보았다.
세계체계론 학자인 아리기(Giovanni Arrighi)는 21세기 도입기, “E”와  “I”라는 말, 즉 "제국(Empire)"과 "제국주의(Imperialism)"의 재유행하게 되는데 그 원인이 이라크 전쟁에서 알 수 있 듯이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제국이 되려고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은 미국은 “기지의 제국”을 건설해 세계사에서 “새로운 로마”가 되었다고 했다. 즉 21세기 전환기 제국론의 부활은 냉전 후 미국의 초강대국화가 큰 원인이다. 그러나 학계에서 제국론이 활성화된 계기는 2000년 하트(Michael Hardt)와 네그리(Antonio Negri)의 『제국(Empire)』의 출판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미국의 우위 하의 세계경제의 글로벌화, 정보기술혁명, 세계 커뮤니케이션 질서의 재편을 “제국”으로 표현한다. 제국과 제국주의를 구별, 현재의 제국은 국민국가에 상당하는 권력의 영역적 중심이 없이 프런티어가 계속 확장하면서 글로벌한 권역 전체를 덮어가는 중심 없는 탈영역적 지배 장치라고 보았다. 아리기는 미국은 세계제국이 되려고 신보수주의적 제국주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파산했고 그 결과 역설적으로 세계 경제와 헤게모니의 중심이 동아시아, 동아시아 안에서도 중국으로 “돌아가도록” 촉진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캘리포니아 학파의 세계사 이해를 대폭 수용되 었다. 중국을 제국의 부활을 꾀하는 미국을 견제할 파워로, 새로운 대안적 국제질서로 중국과 동아시아의 전통적 국제관계에게 기대 를 걸고 있다.

2. 헤게모니론


아리기는 제국론을 비판하면서 정치적 헤게모니와 경제적 금융자본의 중심 이동을 결 합하여 오늘날 미국을 설명하려한다. 그람시는 “파워 디플레이션”=순전한 지배(sheer domination)와, “파워 인플레이션”=헤게모니(hegemony)를 구분하였다. 아리기는 미국이 후자에서 전자로 가고 있다고 보는데, 즉  “헤게모니 없는 지배”가 된다. 헤게모니 위기에는 2종이 있는데 “신호적 위기”와 “최종적 위기”이다. 이 중 이라크 전쟁은 “최종적 위기”이다. 이라 크 전쟁의 실패로 미래를 준비할 새로운 움직임이 등장하는데 바로 동아시아의 경제적 부상과 중국 헤게모니의 등장이다.
이러 한 헤게모니 교체론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 이동설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은 베네치아/제네바,네덜란드, 영국,미 국의 순으로 옮겨졌고, 이제는 중국으로 갈 것이라고 보았다. 아리기는 나아가서 부(wealth)는 힘(power), 즉 곧 헤게모 니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세계 자본주의 중심의 연쇄는 세계 헤게모니의 연쇄이기도 하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 혹은 헤게모니 교체 가 일어나는 징조를 “이전 헤게모니 국가의 금융적 팽창”. “금융위기의 발생”, 그 과정에서 “부의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로의 이 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의 불황과 금융적 팽창을 분석하고 중국이 미국 국채의 최대 채권국이 되어가는 과정을 즉 헤게모니와 자본주의 중심의 “새로운 재배치” 과정으로 주장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하버드 대학의 퍼거슨(Niall Ferguson)은 2008년에 중국과 미국 두 나라 간의 상호 의존체제를 의미하는 “차이메리카(Chimerica)” 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 재발 이후 이 관계가 파탄 파탄될 것으로 전망했다.

3. 중국과 동아시아 재평가

아 리기를 비롯하여 학자들은 왜 중국과 동아시아에 대안을 구하고 있을까. 아리기는 유럽의 근대가 “전쟁으로 점철된 제국주의적 경쟁 과 자본집약적이고 환경파괴적인 산업혁명” 즉 애덤 스미스의 부자연스러운 발전이라면 중국과 동아시아는 “정치적으로는 평화공존의 경제적으로는 노동집약적이고 생태친화적인 발전경로” 즉 애덤 스미스의 자연스러운 발전경로를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다. 아리기는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 간 체제의 차이를 설명한다. 또한 근대에는 동아시아가 서구 경로 쪽으로 수렴되었으나 20세기 후반에는 거꾸로 서구가 동아시아 경로 쪽으로 수렴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아리기가 평가하는 근대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발전 경로로서 중국 과 동아시아의 가능성이 등장한다.
스기하라 가오루는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경로를 이론화하고 높게 평가한다. 아시아는 기계적 분업보다는 어떤 직무도 수행할 수 있는 전천후의 노동 능력과 협업이 필요했고 그러한 전근대의 특성을 근대에 계승하여 오늘날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본다. 스기하라는 근대적 경제 성장이 낳은 병폐, 즉 생태환경의 악화와 자원고갈을 지적하면서도 “인력을 중시하는 동아시아적 발전 경로”가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기하라가 전형적인 사례로 보는 것은 20세기 일본이지만, 아리기에게는 중국이다. 순수한 경제적 대안 경로를 논하는 스기하라와 달리, 아리기는 중국 헤게모니가 정치적으로도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국제적인 구조적 불평등을 전복시키고 더욱 평등하고 분배적인 경로를 창출하기를 기대한다.
중국 대세론에 대한 비판은 아리프 덜릭(Arif Dirlik), 크리스 한(Chiris M. Hann) 등이 검토한 포스트사회주의(postsocialism)에서 나타난다. 이들은 중국에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길이 아닌 새로운 제3의 길을 기대한다. 포머란츠의 경우 최근 중국의 서부대개발을 사례로 들면서 이러한 중국 혹은 동아시아에 대한 친환경적 대안론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다.
그런데 근대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유럽 근대를 비판하는 논자들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공통점의 경우 공업에 가려진 농업의 중요성과 의미를 재평가한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미래의 대안으로서 아시아에 대한 평가 및 자본주의에 대한 평가측면이다.

Ⅴ. 맺음말 : 아시아는 탈근대 시대의 대안일까?

파울 크루첸(Paul J. Crutzen)는 1800년 이래로 지구는 “人類世(the Anthropocene)”로 진입했다고 명명했다. 크루첸의 이러한 명명이 아니더라도 역사가뿐만 아니라 지식계 전반이 유럽이 창출한 근대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으며 생태 위기 속의 아시아적 생산방식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가 발생 하고 이 과정에서 세계경제에서 중국의 비중이 재확인되었다. 또한 “중국이 유럽이 근대로 승승장구하던 200여 년간 잃었던 패권 적 지위를 회복하리라”는 주장, 탄력을 받았다.
이상의 검토와 같이 새로운 세계사 연구는 현실에 깊이 영향 받으며 제기되어 또 다시 현실을 직접적으로 해석하는 인접 사회과학에 자양분을 주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회과학의 새로운 현상 해석은 일반인들이 오늘날과 근미래의 세계를 전망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 같은 새로운 흐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20세기 동아시아 및 중국 부상에 대한 사후적 해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마시타 다케시(濱下武志)는 캘리포니아 학파의 신 세계사는 아메리카 중심주의이다. 한국학계에서는 일본 내의 동아시아론은 일본 중심주의라고 의심하며 캘리포니아 학파와 프랑크와 아리기에 대한 중국중심주의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계몽주의 시대 유럽 지식인들의 중국관의 분기가 유럽 내부의 정치사회 개혁에 대한 시각차를 비추는 거울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중국과 아시아를 보는 관점의 분기 역시 마찬가지로 서구학계의 중국과 동아시아론이 서구 내부의 위기 와 대안에 대한 논쟁에서 동원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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