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일상개념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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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명 :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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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도서명 :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
    • 2.저자 : 이기훈
    • 3.출판사 : 돌베개
    • 4.발행일 : 2014.10.06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

     

    근대, 청년을 호명하다


     

    역사는 왜 ‘청년’을 필요로 했는가?


    ‘청년’은 어떻게 역사를 만들었는가?

     

     

     

    '청년' 개념의 변천과 전개를 통해 읽는 한국 근현대사

     

    식민 지배, 해방과 전쟁, 혁명과 독재의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

     

    그 굴곡진 길을 걸어온 우리 '청년'은 무엇이었는가?




    근대의 아이콘, ‘청년’ 개념의 전개와 변천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다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 근대, 청년을 호명하다』는 청년이 수행한 역할과 그 의미를 통해 ‘청년’ 개념의 전개와 변천을 다루고, 이러한 개념사적 접근법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접근한다. ‘청년’은 한국 사회가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주체로 상정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적 주체’가 설정되어야 했고, 청년은 그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호명되었다. 한국 근현대사는 청년이라는 특정한 세대 주체를 필요로 했고, 그 부름을 받은 청년 주체는 역사를 만든 것이다. 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사에서 청년은 그 주체적 위상으로 말미암아 근대의 아이콘으로 불릴 수 있었다. 역사는 왜 ‘청년’을 필요로 했는가? 그리고 ‘청년’은 어떻게 역사를 만들었는가? 이 책은 역사가 청년이라는 주체에 “어떤 위상과 역할을 부여”했으며, “그 위상과 역할이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추적”한다.(20쪽) 이로써 청년 개념과 담론이 근대화 전략과 어떻게 조우하고, 경쟁했으며, 한편으로 대립했는지를 살핀다.

    교육을 통해 문명화된 국민으로서 ‘청년’ 만들기: 애국계몽기

    ‘청년’靑年이라는 말이 전통사회에서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 개념은 근대적 개념으로 도입되고 정착했다. 과거의 문헌 속에서 ‘청년’은 ‘젊은’ 또는 ‘젊은 시절’을 뜻하는 말이었지, 지금처럼 ‘젊은이’라는 특정 세대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연장자 존중 의식이 지배적인 전통사회에서 청년은 세대 주체로서의 위상을 부여받을 이유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경쟁이 표면화되는 근대 사회에서는 각 분야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회를 이끌어갈 추동세력을 선정해야 했고, 새로운 시대에 어울릴 만한 새로운 주체를 내세워야 했다. 그렇게 하여 근대의 문턱에서 ‘청년’이라는 세대 주체가 도입된다. 1890년대에 도입된 ‘청년’은 1900년대 애국계몽운동이 진행되면서 문명개화론과 결합하여, 이전의 봉건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청년은 새로운 학문(신학)을 배워 몰락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이들은 교육을 통해서 ‘국민’이 될 수 있었다. 근대 국가에 대한 열망은 교육을 통해 개화되고 문명화된 청년상을 이상적인 국민으로 제시했다.

    근대적 개인의 출현과 민족을 선도하는 ‘청년’: 1910년대 일본 유학생

    조선 사회에서 근대적 교육을 받은 최초의 세대는 일본 유학생이었다. 국권을 상실했다는 망국의 현실은 ‘민족’이라는 운동단위가 만들어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일본 유학생들은 잡지 『학지광』을 중심으로 “민족의 문명화를 선도하는 집단”은 청년이 되어야 한다고 표명한다. 청년은 ‘피교육자 되는 동시에 교육자가 되어야 하고 학생이 되는 동시에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자수자양自修自養하는 세대로서 민족을 선도해야 했다. 자수자양하는 청년은 개인으로서 자의식을 갖춘 근대적 인간을 의미했다. 근대적 개인주의라고 할 만한 이러한 인식은 당시 일본 사회에서 유행하는 문화주의 철학과 윤리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이광수와 최남선 등 이후 최고의 지식인으로 군림하게 되는 일본 유학생 세대는 사실상 자신들 스스로가 민족을 깨우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1910년대 조선 사회에서 이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세대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구자적 선언이었다. 이들이 가는 길은 곧 역사가 되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청년’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다: 1920년대

    ‘청년’ 개념을 본격적으로 선취한 것은 1920년대 민족주의 진영이다. 민족주의 진영은 조선 사회의 사회운동을 이끈 양대 축이었는데, 일본 유학생들이 제시한 ‘민족의 문명화’와 3ㆍ1운동으로 촉발된 민족자주의 뜻을 계승하면서, “근대화, 문명화를 선도하는 주체이며 민족을 통합하는 상징”으로 청년을 이해한다. “이들이 이상으로 제시한 청년이란 수양을 통해 근대적 합리성을 내면화하고 문화운동을 이끌어가는 계몽적 주체였다.”(313쪽)
    민족주의 진영의 다른 한편에 사회주의 진영이 있었다. 사회주의 진영은 사회주의 혁명을 이룰 전위로 청년에 주목한다. 사회주의 혁명의 전위는 프롤레타리아라는 특정 계급인데, 조선 사회는 혁명을 달성할 수 있는 계급 기반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형성되기까지 과도기적 단계로 청년 주체의 자리를 마련한다. 프롤레타리아 전위 계급이 되기에 청년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 진영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민족주의 진영은 귀농운동과 농촌 계몽이라는 전략을 통해 활로를 찾고자 했다. 이는 1930년대 초반 브나로드 운동과 문자보급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민족주의 청년론은 1930년대 중반 이후 조선총독부 권력의 청년론과 구별되는 전략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제국주의 권력의 청년론으로 흡수되어버린다. 사회주의 진영의 청년론도 192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그 영향력을 상실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세대론적 주체보다는 계급론적 주체에 더욱 집중하는 노선을 채택하고 강화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이렇다 할 청년론을 개진하지 못하다가, 후반에는 사회주의운동이 불법화, 지하화되면서 그 세를 잃는다.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담론 경쟁을 벌이는 데 ‘청년’이 그 중심에 있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서로 다른 세계를 꿈꾼, 사회운동의 양대 세력이었던 두 진영은 ‘청년’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해야 했다.

    체제 친화형 청년, 파시스트 청년, 그리고 병사형 인간: 1930~1940년대

    1920년대의 청년 담론은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청년’을 부각시켰다. 이때 청년은 국가 권력에 종속되기보다, 좀 더 자율적이고 주체적이었다. 그런데 1930년대에 이르러 제국주의 권력은 청년 담론을 전유하여 식민 통치에 이용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사회운동의 주체가 아닌, 국가와 지역사회에 의해 훈육되는 주체로 규정하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청년의 활기와 진취성을 격하시켰다. 대신 ‘착실’하고 생활에 충실한 ‘모범청년’을 이상화된 청년의 모습으로 제시했다. 기존에 청년이 지녔던 정치사회적 의미를 탈각시킨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체제에 불만을 갖기 쉬운 청년을 통제함으로써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했다. 청년을 통제하는 정책을 고안하고 시행했다. 중앙 권력이 통제 정책을 만들어 청년의 저항성을 순치시키고 ‘선량한 공민’으로 청년을 배치했다. 중앙 권력에 의해 통제되어 체제와 결속한 청년은 국가 정책을 지역사회에 전달하는 가교로써 이용되었다. 권력과 지역사회를 매개하는 이른바 ‘중견청년’이 그것이었다.
    한편 파시즘이 대두하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이광수 등의 일부 지식인들은 ‘영웅’, ‘의지’, ‘힘’ 같은 수사를 써가며 속류 영웅주의적인 청년론을 유포했다. 주운성은 『열혈청년론』에서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영웅으로 숭배하는 파시스트 청년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근대적 자본주의화가 진행되며 입신출세와 세속적 성공을 강조하는 청년론이 확산되었고, 그럴수록 청년의 의미는 더욱 탈정치화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총력전 체제가 가동되었을 때, 청년은 전시 동원의 제일선에 서게 된다. 일제는 청년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국가에 헌신하고 희생하는 청년상을 주입한다. 일사불란하게 청년을 조직화하는 청년단과 훈련소를 만들어 청년을 훈련시키고 이른바 ‘연성’鍊成을 통해 황국 군인으로 양성했다. 1930~1940년대 식민지 조선 청년은 체제 친화적이고 착실한 젊은이로 호명되고, ‘힘’과 ‘영웅’에 의지하는 파시스트로 지향되기를 강요받다가, 마침내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병사형 인간으로 만들어진다.

    극우 폭력의 대명사로 전락한 ‘청년’: 해방공간~1950년대

    1945년 해방이 찾아왔을 때, 이 땅의 정치 공간은 공백 상태나 다름없었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해방된 조선 사회는 정당은 물론이고 10년 이상 언론과 결사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252쪽) 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해방공간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청년과 학생들이 치안 유지 등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청년에게 국가 건설의 역군, 건국의 초석이라는 새로운 역할”(251쪽)이 주어진 것이다.
    국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해방공간은 ‘정치’가 끓어 넘칠 수밖에 없었다. 청년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자신들이 꿈꾸는 나라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연설하고 시위했다. 길거리가 바로 정치 미디어였고, 이 시기 청년의 전형은 ‘가두청년’이었다. 파시스트 권력이 떠난 자리에서 청년은 새로운 정치를 열망했으며, “정치세력은 이런 청년을 더욱 정치화하고자 했다.”(252쪽)
    해방공간에서 처음 주도권을 잡은 것은 좌익이었다. 좌익은 조선청년총동맹(청총)을 조직하여 청년으로 하여금 “인민을 대변하는 투쟁 주체”가 되기를 요청한다. 그러나 1945년 말부터 좌익이 주도하는 정국을 흔들어놓기 위해 우익 정치세력과 청년단이 결탁하여 좌익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신탁통치를 둘러싼 투쟁은 우익이 좌익에게 폭력을 가하는 좋은 명분이 되었다. 이후 해방공간은 정치 테러와 폭력으로 점철된다.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구성하고자 했을 때 남한 내 좌익을 공격하는 데 앞장선 것도 우익 청년단이었다. 우익 청년단은 국가 만들기가 폭력의 과정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들은 사설 청년단에 그치지 않고 사실상 군인과 경찰과 같은 국가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월남한 반공청년들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회(서북청년단 또는 서청)는 ‘제주 4ㆍ3 사건’ 등에 투입되어 양민 학살을 주도하였고, 대한청년단(한청)은 ‘여순사건’을 진압하는 선봉에 섰다. 이승만은 청년단을 사실상 자신의 정치적 전위집단으로 활용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1950년대에 이르는 시간 동안, ‘청년’은 극우 폭력의 대명사였다. 저자는 이 시기 청년의 이미지가 매우 “우울하고 퇴폐적이었다”고 지적한다.

    청년, 혁명과 저항의 주체로 부활하다: 1960~1970년대

    1920년대 이래 1930년대 초반까지, ‘청년’은 주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진취적인 주체였다. 그러나 권력이 ‘청년’을 전유하기 시작한 1930년대 중반 이후 1940년대 총력전 체제와 해방공간을 거쳐,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까지 ‘청년’은 국가권력에 의해 전략적으로 활용당하는 수동성을 면치 못한다. 이러한 국면을 다시 역전시키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4월 혁명(4ㆍ19)이었다.
    4월 혁명은 중고교생, 일반인, 대학생 등이 함께 참여한 거국적 봉기였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4월 혁명을 통해 본격적으로 조명받은 집단이 대학생이었다는 점이다. 1950년대까지 대학생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특권 계급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4월 혁명을 주도한 ‘청년학생’은 중고교생이었고, 대학생은 비교적 늦은 시점에 혁명에 참여했는데, 혁명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대학생이 새로운 세대 주체로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4월 혁명이 ‘청년’의 개념사에서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대학생이 4월 혁명의 유일한 주체라고 볼 수는 없지만, 4월 혁명이 한국 현대사에서 ‘대학생’을 처음으로 청년 주체로 발견한 건 분명해 보인다고 말한다. 이름하여 ‘4ㆍ19 세대’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이후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은 청년 담론의 중심에 자리한다.
    1970년대 ‘청년문화’ 논쟁은 억압적 통치체제하에 서구문화가 유입되면서 점화된 현상이었다. 통기타, 블루진, 생맥주로 상징되는 청년문화는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하며 문화적 저항이라는 우회로를 경유하여 억압적 정치체제에 균열을 내고자 한 것이었으나(김병익), 정작 당시 학생운동권으로부터 공식적 인증을 받지 못한다. 청년문화는 그저 대학 사회의 하위문화 정도로 인식되었는데, 이는 “대학 사회의 뿌리 깊은 엘리트주의에 기인”하기도 했지만, “민족주의 성향과 엄숙주의의 영향”(306쪽)이 작용한 이유도 있었다. 유신체제와 긴급조치 시대에 학생운동의 전략은 우회적일 수 없었다. 대학생들은 ‘민족, 민주, 민중’의 가치를 실현하는 주체여야 했으며, “민족ㆍ민중문화와 학생운동을 연결시켜 새로운 저항의 모델을 제시”(308쪽)해야 하는 ‘구국’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은 무엇인가?: 역사가 현재에 묻는 질문

    이 책을 통해서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명멸한 ‘청년’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가 ‘청년’을 필요로 하고 전략적으로 호명한 측면이 있었지만, 비교적 청년의 적극적 역할이 강조되었을 때 ‘청년’의 의미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이었다. 1920년대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에서 내세운 청년은 역사를 이끄는 전위였고, 1960년 4월 혁명에서 청년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젊은 사자들’이었다. 1970년대 이후 대학생은 독재체제를 비판하고 이에 저항하는 가장 중요한 세력이 된다. 이에 비해 국가 권력에 의해 호명되고 이용되었던 청년은 체제를 유지하고 비호하는 꼭두각시 역할을 수행했다. 1940년대 침략전쟁의 첨병이 된 청년이나, 해방공간과 1950년대 정치 폭력에 앞장선 우익 청년단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시대를 만들어가는 전위가 되느냐, 국가 권력에 포섭되는 수동적 존재가 되느냐에 따라 청년은 그 모습을 완전히 달리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청년은 어떤 모습일까? 청년이 사회의 중추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국가와 기업집단의 이익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말단으로 취급되고 있는가? 역사가 현재에 묻는 질문이다.

    차례

    일상개념총서 발간사
    책을 펴내며_ 근대의 아이콘, ‘청년’의 개념을 탐색하다
    프롤로그_ ‘청년’이라는 개념의 역사에서 담론의 역사까지

    1부 근대적 의미로서 ‘청년’ 개념의 도입: 1900~1910년대
    1장_ 소년은 청년이고, 청년은 소년이다?: 전통사회의 젊은이
    고중세 시기 중국과 한국의 젊은이 호칭ㆍ조선 후기 젊은이에 대한 호칭과 인식
    2장_ 새로운 세상, 새로운 젊은이: 문명개화론과 ‘청년’의 도입
    개화를 둘러싼 신학·구학 논쟁과 세대 관념의 변화ㆍ‘청년’의 도입과 그것이 직면한 시련
    3장_ 청년, 애국심과 계몽에 의해 ‘국민’이 되다
    청년, 다시 등장하다ㆍ1900년대 국내의 청년론ㆍ1900년대 유학생의 청년론
    4장_ 부형도 없고 선배도 없어라: 1910년대의 청년론
    본격적인 근대인으로서의 청년의 부상ㆍ『학지광』 그룹의 청년론ㆍ청년, 일상으로 정착하다

    2부 ‘청년’ 개념의 발달과 분화: 1920년대
    1장_ 민족과 청년: 민족주의 청년론
    1920년대 전반기의 사회운동과 청년ㆍ조선의 청년, 청년의 조선ㆍ청년과 청년성: 어떻게 청년이 될 것인가?ㆍ사회주의 청년론에 대응하기 위한 민족주의 청년론의 전환ㆍ민족주의 청년론과 성性
    2장_ 계급과 청년: 사회주의 청년론
    진보적 청년론의 대두(1921~1922년)ㆍ전위로서의 청년(1923~1926년)ㆍ계급의 전면적 등장과 ‘청년’의 위상 약화(1927~1930년대 초)ㆍ1920년대 사회주의 청년론과 성性

    3부 제국주의 권력과 ‘청년’ 개념의 변화: 1930~1940년대
    1장_ 모범청년과 중견청년: 총독부의 청년정책과 ‘청년’ 개념의 변화(1930년대)
    총독부의 정책과 청년 통제ㆍ지도와 훈련의 대상이 된 청년ㆍ‘실질’과 ‘착실’로 탈정치화되는 청년: 모범청년ㆍ제국주의 권력과 지역사회를 매개하는 청년: 중견청년
    2장_ 계몽과 혁명: 조선인 사회운동의 청년론
    계몽적 청년상의 재구성: 민족주의 진영의 청년론ㆍ청년의 계급별 해체와 약화: 사회주의 진영의 청년론
    3장_ 청년, 길을 잃다: ‘청년’의 속류화와 파시즘
    고뇌하는 청년, 병든 청년ㆍ속류 영웅론과 파시스트 청년론ㆍ입신출세 지향 ‘청년’의 확산
    4장_ 전시체제하의 청년(1937~1945년)
    조선 청년, 전시 동원의 제일선에 서다ㆍ일제 침략전쟁의 도구, 흥아청년
    5장_ 청년, 국가에 속하다
    청년단 체제와 국가에 부속된 청년ㆍ국가 소유가 된 청년의 몸ㆍ조선 청년, 황국 군인이 되다

    4부 청년의 두 얼굴, 국가 폭력과 저항의 주체: 해방 이후
    1장_ 반공청년의 시대(해방~1950년대)
    거리에 넘쳐나는 정치·폭력 청년: 해방공간의 좌우익 청년 간 투쟁ㆍ반공국가의 청년ㆍ한국전쟁과 전후의 청년
    2장_ 저항과 재건: 청년, 역사의 주체로 다시 살아나다(1960~1970년대)
    젊은 사자들의 등장: 4월 혁명과 학생운동ㆍ청년, 재건운동과 새마을운동을 이끌다ㆍ1970년대 청년문화와 저항의 청년 전략

    에필로그_ 근대가 호명한 청년, 청년이 만든 근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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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이기훈

    과거를 성찰하는 일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리라고 믿는 역사 연구자.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목포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가르친다. 주된 관심사는 오늘날 우리 삶의 바탕이 되는 다양한 조건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 추적하는 일이다. 이 책의 주제인 ‘청년’을 비롯하여 ‘어린이’와 ‘소년’, 그리고 그들이 속한 ‘학교’와 같은 사회조직의 역사를 공부해왔으며, 지역사회와 공간구조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전쟁으로 보는 한국역사』(1997), 『근대를 다시 읽는다 2』(공저, 2006), 『식민지 공공성—실체와 은유의 거리』(공저, 2010), 『탈냉전사의 인식』(공저, 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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