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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24일자 경향신문 기사

관리자 | 2011.06.30 00:00 | 조회 2497
‘중화’ 대체할 문명으로 ‘개신교’ 택한 근대 한국
동아시아 문명의 근대적 전환’ 학술대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과 한림대 한림과학원이 최근 개최한 ‘동아시아 문명의 근대적 전환 : 개념의 번역과 창조’ 학술 국제 심포지엄은 19세기 말에 서 20세기 초 동아시아에 들어온 근대의 여러 개념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근대 형성을 분석한 학술대회였다. 일본의 번역을 통해 한 국에 이식된 근대 개념은 전이와 변용의 개념화 과정을 거치며 한국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박노자 노르웨이 국립오슬로대 교수는 인 종 담론을 중심으로, 이경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는 중화와 서구 문명 개념으로 ‘근대적 전환’을 풀어냈다. 

이경구 교수는 ‘중화에서 문명으로의 개념 전이’에서 개신교가 중화 사상과 성리학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집중 분석했다. 고려·조선 시대 이래 한국에서 문명을 상징한 개념은 중화였다. 

이 교 수는 “16세기 사림이 등장하며 중화는 국가·국제 질서 차원을 넘어 일상적으로 침투했고, 17세기 명·청 교체를 경험하면서는 조선 이 중화 자체에 자신을 강하게 투영했다”고 말했다. 명의 멸망 뒤 조선 지식인들이 유교의 명맥을 후대에 계승해야 한다며 내세운 조 선중화주의가 예다. 

18세기를 거쳐 19세기를 지나면서 중화 개념은 변한다. 1870년 일본에서 서유럽의 ‘civilization’이 ‘문명’으로 번역, 소개됐다. 이후 조선으로 들어온 서구 문명 개념은 ‘개화’와 짝을 이루며 부각된다. 

이 교 수는 “문명의 기준 자체를 변화시키려 한 관점의 대표 옹호자는 1896년 이래 발간된 ‘독립신문’이었다”며 “그들은 서양의 종 교, 정치, 풍속을 기준으로 삼아 모든 것을 서양화하는 것이 바로 개화라는 인식을 널리 전파했다”고 말했다. 

한국을 오랫동안 지배했던 중화 개념은 단순히 중국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고, 개신교가 중화의 지위를 대신해 나갔다. 

이 교 수는 그 전환 과정과 관련, “우월한 문명이라는 지위를 안정적으로 완성하고 논리적 완결을 갖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명 개념은 절대 적 규범, 우주적 질서, 자연 법칙의 신념 체계를 가져야만 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기존의 중화가 철학 체계와 선악 시비 판단 을 모두 가지고 있었듯이 서양 문명 또한 기술 문명, 정치 제도를 넘어 ‘교(敎)’ 차원에서 진리를 점유하는 체계성을 지니고 있어 야만 했다”며 “그 정도의 차원을 가진 정신 체계는 기독교, 엄밀히 말해 개신교였다”고 설명했다. 

개신교는 선교 초 기 서구 문명 전파에 적극적이지 않던 천주교에 비해 근대 문명의 옹호자이자 주역임을 내세웠다. “선교사들의 복음은 종교를 넘어 선 교 대상의 마음, 습관을 서구식으로 개조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 교수는 “개항기 지식인들에게 새 문명의 기호로 수용되었던 기독 교는 단기간 내에 가장 고귀한 이상을 지닌 가르침의 지위를 획득했다”며 “마치 유교의 힘이 중국 제국으로 증명되었듯이 한국에서 전 개된 기독교 선교의 두드러진 효과를 기대했던 선교사들과 기독교에서 사회 변혁과 우수한 문명을 향한 새로운 동력을 발견한 한국 지식 인들의 조우는 새로운 기독교 국가에 대한 희망으로 귀결하였다”고 말했다. 

일본, 중국과는 다른 현상이었다. 이 교수 는 ‘개인-기독교-국가-세계 문명’ 건설을 가장 체계적으로 구상하고 실천한 인물로 이승만을 꼽았다. 이 교수는 “기독교에 바탕 을 둔 서양 문명의 힘을 경험한 이승만은 기독교가 사회 변혁 사상이라고 확신했다”며 “그에게 기독교는 일제 시기에는 독립과 문명화 를 가능하게 하는 혁명의 거점이었고, 해방 후에는 ‘사악한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민주 국가 건설의 수호신이었다”고 분석했다. 

왜 한 국인들은 일본, 중국과 달리 기독교를 서양 문명의 정수로 받아들인 것일까. 이 교수는 “아마 17세기 이래 유교 문명의 정수인 중 화를 보편 진리로 확신해 왔던 경험 때문이 아닐까”라며 “말하자면 한국의 지식인들은 문명이란 단순히 물질 차원이 아니라 가치 판단 의 근거인 정신적, 도덕적 실체라는 점을 역사적 유산으로 물려받아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명은 서구의 우월감을 내 포한 개념이었다. 인종적 우월감도 포함된다. 19세기 후반 이후 한국에서 세계 체제 기반의 요소 중 하나였던 ‘인종’은 어떻게 받 아들여졌을까.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는 “ ‘인종’은 초기 모더니스트 담론의 지배적 개념은 아니었고, ‘문명’이 나 ‘진보’보다는 덜 중심적이었다”면서도 “한국의 근대적 전환 과정에서 인종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인 종 개념은 러일전쟁이 임박하면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당시 지식인들은 러시아와 비교할 때 약소국이자 인종적, 문화적으 로 더 근접한 나라인 일본과의 동맹이 닥쳐오는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중국 만주를 군사적으 로 점령한 ‘백인 러시아’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황인종’ 전체에 대한 잠정적 위협으로 여겨졌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러시아에 대 한 전쟁 선포는 ‘모든 황인종들을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의 공격적 민족주의의 상징이 된 안중근도 당시 일본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해 동아시아 ‘황인종’ 세 국가에 대한 잠재적인 백인의 위협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890년대 중반에나 소개되었던 ‘인종’이란 단어는 1900년대 초반 꾸준히 대중화된다. 또 일본의 식민 통치를 겪으면서 인종 개념은 다시 변화를 겪는다. 

박 교 수는 “일본은 여전히 수사적으로 ‘황인종 연대’의 중요성을 설파했지만 한국인들은 식민통치를 겪으며 ‘동료 황인종’ 식민지배자들 이 그들에게 행한 민족적 차별의 지속성을 깨닫게 되었다”며 “이 시기에 이르면 ‘피의 논리’는 그 방향을 선회하는데, 민족적 조선 의 ‘피’는 ‘한국성’의 변화불가능한 정수로 재현되고, 그 결과 일본인과의 결혼은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에 서 ‘민족적 동질성’의 논리는 더욱 공고하게 되었고, 45년 이후 북한과 남한 모두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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